
영조 때는 양역의 폐단을 시정하려는 균역법을 시행했다. 균역법 시행으로 농민들은 1년에 군포를 1 필만 부담하면 되었다. 지주에게 결작이라고 하여 토지 1 결당 미곡 2두를 부담시켜 균역법 시행으로 감소한 재정을 채웠다. 선무군관포로 일부 상류층에게 선무군관이라는 칭호를 주어 군포 1 필을 납부하게 했다. 또한 어장세와 선박세 등의 잡세 수입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하지만 균역법의 시행에도 토지에 부과되는 결작의 부담이 소작 농민에게 돌아갔으며 군정 문란이 다시 심해졌다.
조선시대에는 농업 생산력 증대에 힘썼다. 정부는 개간 사업을 장려해 황폐한 농토를 개간하고자 했다. 하지만 재력이 있는 양반 관료나 토호에게만 유리해 농민들은 오히려 소유지를 잃어가거나 감축당했다. 현종 때는 제언사를 설치하고 정조 때는 제언절목을 반포해 국가에서 저수지를 관리하기도 했다. 시비법을 개량했으며 밭농사를 위해 농종법과 견종법을 겸하여 실시했다. 모내기법을 확대해 벼와 보리의 이모작으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증대시켰다. 모내기법은 노동력을 줄이고 수확량을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18세기 이후 철제 수공업이 발달하면서 농기구를 개량할 수 있었고 후기에는 쌀, 목화, 채소, 담배 등 상품 작물의 재배가 있었다. 모내기법의 보급으로 광작이 대두되었다. 지주와 자작농은 물론이고 소작농도 더 많은 농토를 경작할 수 있었다.
타조법은 소작인이 지주에게 일정 비율인 수확의 반을 바치는 정률지대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전세와 종자, 농기구를 소작농이 부담하게 되어 농민에게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소작료 외에 지주가 사적인 부담이나 노역을 요구하기도 했다. 도조법은 농사의 풍흉에 관계없이 일정한 소작료를 납부하는 정액지대를 의미한다. 수확량의 1/3만 지주에게 바치도록 했기 때문에 소작인에게 유리했다. 도전법은 상품 화폐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해 소작료 납부 형태가 금납제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도전법으로 인해 소작농의 농업 경영을 더욱 자유롭게 했다.
일부 농민들은 소득이 증가해 부자가 되었지만 토지를 읽고 몰락하는 농민도 증가하였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민영 수공업이 발달했다.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했고 제품의 수요가 증가했다. 관영 수공업이 쇠퇴에 민영 수공업이 증가하여 수요의 대부분을 충족하게 되었다. 자유 생산 활동이 가능해져 품질과 가격 면에서 관영 수공업 제품과 비교가 되었다. 전문 생산 체제를 갖추었으며 도시를 중심으로 민영 수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수공업은 상인이 시키는 대로 먼저 대가를 주고 만들게 하는 선대재 수공업으로 변화하였고 수공업자들은 상업 자본에 예속되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독립 수공업이 등장했다. 독자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직접 판매했으며 주로 놋그릇, 농기구, 모자, 장도 분야가 있었다.
민영광산도 증가하였다. 초기에는 정부만 광산을 경영할 수 있었는데 후기에는 허가받은 민간인에게 광산채굴을 허용하고 세금을 받는 설점수세제가 이루어졌다. 17세기에는 사채를 허용해 허가받은 민간인은 정부의 감독 아래에서 광물을 채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간인의 광물채굴이 활발하지는 않았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상업 자본이 광산 경영에 참여하면서 금광 개발이 활발해졌다. 광산의 개발로 얻는 이득이 많았기 때문에 몰래 채굴하는 잠채가 성행하였다. 조선 후기 광산 경영은 전문 광산 경영인인 덕대가 상인 물주에게 자본을 조달받아 노동자를 고용하여 광물을 채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와 같은 작업 과정은 분업에 토대를 두고 협업을 진행하였다.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공인이 등장했다. 그들은 관청에서 공가를 미리 받아 필요한 물품을 사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관청별, 종목별로 공동 출자를 해 계를 조직하고 상권을 독점했다. 그 결과 납부할 물품을 수공업자에게 위탁해 수공업 성장을 도울 수 있었다. 독점적 도매상인인 도고로 성장하게 되었다. 사상은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상인을 의미했다. 18세기 이후에는 사상의 성장을 정부가 막을 수 없게 되어 육의전을 제외한 나머지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철폐했다. 이로 인해 사상들은 자유로운 상업 활동이 가능했다. 사상의 일부는 도고로 성장하기도 했다. 사상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대표적인 사상으로는 개경의 송상, 한강을 근거지로 한 경강상인이 있었다. 조선 후기 사상활동은 계속해서 늘어나 전국적으로 1000여 개에 달하였고 장시가 발달하여 유통망을 연결하는 보부상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배가 들어오는 포구에서의 상업활동도 성장했다. 선상은 선박을 이용해 각 지방에서 구매한 물품을 포구에서 처분하는 것을 의미했다. 선상의 활동이 성장하면서 젖국 각지의 포구가 하나의 유통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객주와 여각은 지방의 큰 장시에도 있었는데 포구에서 활동하였다.
청나라와 무역을 하였는데 공인된 무역 장소는 개시, 밀무역인 후시가 있었다. 책문 후시가 가장 활발했다. 교역 수출품으로는 은, 종이, 무명, 인삼 등이 있었고 수입품으로는 비단, 약재, 문방구 등이 있었다. 일본과의 무역은 17세기 이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동래의 내상은 일본과 해상 무역을 주도했다. 조선은 인삼과 쌀, 무명 등을 팔았고 은과 구리, 황, 후추 등을 수입했다.
하지만 수입품 중에는 사치품이 많았고 수출품에는 은과 인삼이 큰 비중을 차지해 국가 재정과 민생에 문제점이 야기되기도 하였다.
상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동전도 자연스럽게 유통되었다. 인조 때 상평통보를 처음 제작했고 효종 때 십전통보를 발행했으나 유통에는 실패했다. 숙종에 이르러서야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이 되었다. 그리하여 18세기 후반부터는 상평통보만 가지면 물건 사는 것이 가능해졌다. 동전은 부 축적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동전 발행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사적으로 동전을 주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이 재산 축적 수단으로 동전을 써서 시중에 동전 부족 현상인 전황이 나타나 이익은 폐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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