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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리의 한국사 공부

[한국사] 조선의 역사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사람 중 한 명은 정도전이었다. 정도전은 성리학자이자 재상 중심 정치를 강조했다. 이에 반해 태종 이방원은 국왕중심정치를 중요시했다. 그래서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을 제거하였다. 신진사대부는 조선 건국에 큰 역할을 했다. 신진사대부는 혁명파와 온건파로 나뉘었다. 혁명 파는 조선 건국하는데 찬성을 하였던 정도전과 조준이었고 이들은 이후 훈구파가 된다. 온건파는 조선건국에 회의적이었고 정몽주와 길재가 이에 해당했다. 이후에 이들은 사림이 되었다. 사림은 훈구에 의해 제거되거나 지방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후 성종이 사림을 다시 불러들여 훈구 세력을 비판하도록 했다. 훈구는 사림을 내쫓으려 했다. 

 

조선의 첫 왕은 태조 이성계였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이후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 군사 조직을 개편해 고려시대 상군도총제부를 의흥상군부로 개편했다. 조선 건국의 핵심 인물이었던 정도전은 재상중심 관호체제와 민본사상을 강조했고 '불씨잡변'에 불교비판을 하고 성리학을 강조하는 내용을 작성했다.

태종 이방원은 1차,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국왕중심 정치를 강조했으며 1차 왕자의 난 때는 배다른 형제와 정도전을 제거했고 2차 왕자의 난 때는 같은 배 형제까지 제거했다. 태종은 6조 직계제를 실시해 왕권 강화에 힘썼다. 6조 직계제는 의정부를 패스하고 6조가 직접 왕에게 명령을 받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의정부의 권한은 약해졌다. 태종은 통치체제를 정비해 도평의사사를 폐지했고 사간원을 독립시켜 문하부 낭사가 독립적으로 대신 견제하도록 하였다. 지방행정제도를 8도 제로 개편했고 모든 군현에 지방관을 파견했다. 천민부터 양민까지 16세 이상 모든 남자에게 세금을 걷고 군역을 위해 호 폐법을 실시했고 사원토지를 몰수하고 억울한 노비를 해방하며 지방 권세가를 통치해 경제 기반을 안정시켰다. 사병을 폐지하고 친위군사를 두어 군사력을 강화시켰다. 신문고를 설치해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토로할 수 있도록 했다. 

세종 즉위 시기에는 안정된 왕권과 경제력, 유교정치를 실현한 시기였다. 세종은 집현전을 강화해 집현전 학자들과 한글을 창제했으며 의정부 서사제로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루었다. 유교윤리를 강조했고 유교적 민본사상을 실현해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고 사가독서제를 실시했다. 세종은 공법을 실시해 전세를 인하하고 공평한 과세를 부과했다. 사창제를 실시해 빈민을 구제했다. 4군 6진을 개척했고 쓰시마섬을 정벌하기도 했다. 

문종과 단종 시기에는 왕권이 약화되었다. 단종 때는 계유정난이 일어나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세조 때는 다시 6조 직계제가 실시되었다. 집현전과 경연을 폐지했고 종친을 등용시켰다. '경국대전' 편찬을 착수했고 진관체계로 지역 중심 방어체제를 구축했다.  호적사업을 강화해 보법을 실시하기도 했다. 직전법으로 현직 관료에게만 토지를 지급했고 이시애의 난 이후 유향소를 폐지하기도 했다. 

성종 때는 홍문관을 설치해 집현전을 계승했다. 경연을 중시했으며 '경국대전' 편찬을 마무리해 반포하여 조선 왕조 통치 체제를 확립했다. 사림을 등용시켜 훈구파를 견제했다. 유향소를 다시 되돌리고 사창제를 폐지시켰다. 

 

조선시대 중앙정치체계는 중앙에 의정부, 승정원, 의금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한성부, 춘추관, 성균관이 있었고 지방에는 8도와 부, 목, 군, 현이 있었다. 의정부는 배관과 국정을 총괄해 합의제로 이루어졌고 왕의 명령에 의해 집행했다.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하던 곳이었고 수장은 도승지였다. 의금부는 왕명에 의한 특별 재판 기관이었다. 삼사는 언론 기능을 담당했는데 여기에는 자문역할을 하는 홍문관과 관리 감찰 기관인 사헌부, 왕에 대한 간쟁을 하는 사간원이 있었다. 한성부는 수도 행정 및 치안 기관이었고 춘추관은 역사서를 편찬하는 기관이었다. 예문관에서는 왕의 교서를 작성했다. 

8도에는 관찰사를 파견해 행정, 감찰, 사법, 군사권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부, 목, 군, 현에는 수령을 파견했다. 군현 밑에는 면, 리, 통이 있었으며 다섯 집을 1통으로 보았다. 향, 소, 부곡을 일반 군현으로 승격시켰으며 모든 군현에 수령을 파견했다. 파견된 수령은 행정, 사법, 군사권을 가졌다. 그 지역 출신을 임명하지 않아 상피제를 실시해 수령을 파견할 때 부정부패를 막았다. 향리는 수령의 행정 실무 보좌를 하게 되어 권한이 이전보다 약화되었다.

특수지방행정 조직으로 유향소와 경재소가 있었다. 유향소는 지방 사족들의 자치기관으로 좌, 수 별감을 선출하여 자율적으로 규약을 만들어 여론을 수령하고 백성을 교화했다. 유향소는 수령을 보좌하고 향리를 감찰하는 역할을 했다. 이후 선조 때 향소, 향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경재소는 그 지방 출신의 중앙 고관을 책임자로 하여 정부와 향촌 간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에 경재소를 두고 유향소를 중앙에서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훈구파는 중앙을 중심으로 힘을 키웠으며 대농장을 소유했다. 타사상에도 그나마 허용적이었고 기술을 중시했다. 성균관과 집현전에서 주로 양성되었다. 중앙집권, 부국강병, 사장중시를 강조했다. 사림파는 지방을 중심으로 힘을 키웠고 중앙의 중소지주로 기술을 천시했고 경학중시를 하고 향촌자치와 왕도정치를 강조했다. 성리학 외 타사상은 배척했다.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으로 이후 사화가 일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