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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리의 한국사 공부

[한국사] 고려 - 문벌귀족, 무신정권, 거란의 침입

 

고려에는 과거제가 문과, 잡과, 승과 세 개가 있다. 하지만 과거제에 무과는 없었고 이후 공민왕 때 무과 과거제가 생겨났다. 음서와 함께 고급 관료의 권력이 되었다. 잡과는 기술관으로 주로 백정 농민이 이에 응시했다. 승과는 승려를 선발하는 과거제로 교종과 선종을 나눠 선발했다. 

음서는 5품 이상 고위 관료 자손이 과거를 거치지 않고 특혜를 받을 수 있었다. 정치적 특권으로 공신의 자손, 왕실의 후손, 5품 이상 고위 관료 자제가 이에 해당했다. 원칙적으로는 18세 이상이 음서를 받을 수 있었으나 대부분 15세 전후로 받았고 적게는 10세 미만에도 음서를 받은 경우가 있다고 한다. 관직의 승품에 한계 또한 없었다.

 

고려 지위층에 문벌귀족이 등장한다. 지방 호족 출신인 문벌귀족은 여러 세대에 걸쳐 고위관리를 배출했다. 관직에 따라 과전을 지급받았고 5품 이상 관료에게 지급되는 공음전은 문벌귀족의 경제적인 특권이 되었다. 그리고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어 사회적 특권을 가지기도 했다. 

 

이자겸은 경원 이 씨 가문의 문벌귀족이었다. 이자겸은 예종이 죽은 뒤에 인종을 즉위시키고 권력을 장악했다. 또한 예종과 인종에게 딸들을 시집보내 사회적 특권을 가졌다. 대내적으로는 문벌귀족의 중심 질서를 유지했고 대외적으로는 금나라와 타협하였다. 인종 때 척준경과 함께 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인종이 척준경을 회유하여 척준경은 이자겸을 살해하게 되고 이후 척준경도 탄핵을 당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중앙 지배층 사이 분열이 일어나 문벌귀족 사회 붕괴되는 요인이 되었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은 개경 문벌귀족과 서경 지방 출신 묘청과 정시상의 대립을 보여준다. 개경 세력 문벌귀족에는 대표적으로 김부식이 있었다. 이들은 유교이념을 바탕으로 보수적이고 사대적인 성격을 보였다. 금나라와 사대관계를 주장하였다. 이에 대립하는 서경세력은 고구려 계승 이념을 바탕으로 자주적이고 진취적이며 북진적인 성격을 가졌다. 서경 천도론과 풍수지리설을 바탕으로 금국 정벌론을 주장하였다. 이들 사이의 대립은 개경 세력의 승으로 끝나게 된다. 묘청은 서경 천도가 어렵게 되자 서경에 대위국을 세워 연호를 천 개로 하였다. 이는 김부식에 의해 진압되었다. 

 

무신정권은 문벌귀족 이후 고려를 장악했다. 문벌귀족 지배 체제 내 갈등이 점차 심해졌고 무신들은 문신을 우대하고 무신을 차별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무신정변을 일으켰다. 정중부와 이의방을 중심으로 보연원에서 무신정변이 일어났고 무신은 다수의 문신을 죽이고 의종을 폐위시키고 명종을 즉위시켰다. 이후 무신이 권력을 잡으며 무신집권기가 시작이 되었다. 경대승은 정중부를 제거하고 도방을 설치했고 이의민은 천민인데도 최고 권위자가 되었다. 최충헌으로 최 씨 무신집권이 시작되었다. 무신집권기에는 전시과가 붕괴되고 지배층이 대토지를 소유하였다. 정치싸움이 많이 일어나 중앙 정부 지방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명종 때 권력을 잡았던 최충헌은 봉사 10조를 제시해 농민 항쟁을 진압했다. 교정도감은 최 씨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기구로 수장은 교정별감이었다. 사병인 도방이 부활하였다. 최우는 권력기구 정방으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였다. 도방과 함께 삼별초를 군사기구로 두었고 교정도감을 설치했다.

 

무신정권에 대한 반발이 이후 여러 번 일어났다. 김보당의 난은 최초의 반 무신 난이었다. 이는 명종 때 일어난 의종 복위 난이었다. 교종 계통 승려의 난도 있었는데 이 난이 바로 귀법사의 난이다. 조위총의 난도 서경에서 일어났다. 이외에도 농민들이 많은 난을 일으켰다.

무신집권기 초기에는 공주 명학소 망이, 망소이의 난이 명종 때 일어났다. 정중부 집권기로 명학소는 충순현으로 승격하였다. 경대승 집권기 때는 전주 관노의 난이 일어났고 이의민 집권기 때는 김사미, 효심의 난이 일어났다. 이 난은 신분해방 및 신라 부흥운동과 관련되었고 운문과 초당지역에서 일어났다. 최충헌 집권 시기에는 천민들 신분해방운동이 많이 일어났다. 만적의 난이 대표적인데 최충헌의 노비인 만적이 개경에서 "누구나 공경대부가 될 수 있다."라고 외치며 난을 일으켰다. 합천에서는 광명, 계발의 난이 일어났고 경주에서는 신라 부흥운동으로 이비, 패좌의 난이 일어났으며 서경에서는 고구려 부흥운동으로 최광수의 난이 일어났다. 최우 집권기 때는 백제 부흥운동으로 이연년 형제의 난이 담양에서 일어났다.

 

고려에는 외세의 침입이 여러 번 있었는데 거란을 시작으로 여진의 공격을 받았고 무신정변이 국내에서 일어난 이후 몽골과 왜구, 홍건적이 순서대로 고려를 쳐들어왔다.

고려에는 거란의 침입이 3차례나 있었다. 1차 침입 때는 거란이 북진정책과 송나라와는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고려를 쳐들어왔다. 성종 때 1차 침입을 했는데 서희의 담판으로 여진 땅인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이후 고려가 송과는 친선관계를 맺고 있으니 거란과도 교류를 하자고 요구하였고 이를 거부하자 강조의 정변을 계기로 강동 6주를 넘겨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를 거부하자 현종 때 2차 침입을 하였다. 개경이 함락당했지만 양규의 활약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3차 침입도 현종 때 있었는데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고려가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고려는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였고 강동 6주 요구를 철폐하였다.

이후 북방 민족 침입을 대비해 압록강부터 도련포까지 천리장성을 축조하였고 강감찬의 건의로 개경에 나성을 축조하였다.